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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당주
읽기 전에.
[그녀는 'XXXX XXX'이다]라는 수수께끼의 광고 이후 제시된 [포니테일 대마왕]이라는 제목. 인상적인 하이 컨셉의 이 제목이 불러온 여파는 컸다. 천하는 피로 물들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 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라노베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가는 커뮤니티에서는 꽤나 시끌벅적했다. 흔히 말하는 '모에' 물에 대한 경멸인지 아니면 하이 컨셉에 대한 거부감인지 잘 알 수 없는 논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뒤이은 2차 광고에서 시드노벨은 첫 인상과 전혀 다른 무거운 배경을 주로 소개했고, 몇몇 설정이 공개되며 또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논쟁이 벌어졌다. 노이즈 마케팅 운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게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할 상황인지는 조금 의문이다. 개인이 위성을 갖고 있다는 게 논쟁거리가 되어 흥행에 도움을 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출판사가 과연 있으려나……. 각설하고, 낚이는 걸까 아닐까 싶어 불안해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 이 소설은 1차 광고를 본 사람들의 추측처럼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소녀가 주변 사람들을 멋대로 휘둘러대는' 이야기가 아니고, 2차 광고에서 주었던 인상처럼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저 광고들과 전혀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간단히 말해서, [적당한 난관을 가진 소년 소녀의 알콩달콩한 연애담]이다. 그것도 꽤 괜찮은. 이런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서점으로 뛰어가도 좋다. 물론 이런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손도 대지 않는 게 좋을 테고. 자극이, 적다……. 독특하고 체계적인 설정, 깜짝 놀랄만한 구조의 플롯으로 어필하는 작품은 아니다. 1권에서 주력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서능라/나은하의 소개, 세계관의 중심 소재인 도플갱어의 소개, 그리고 주인공들이 겪는 작은 사건에 대한 것이니까. 인물 간의 관계도 새로운 만남이나 변화보다는, 초기에 설정되어 있는 인물간의 감정 상태를 알려주는 쪽에 가깝다. 인류의 반이 절멸한-것으로 생각되는- 세계관도 그 첫인상에 비해 그다지 무거운 느낌은 아니다. 실질적인 방어수단이 거의 없는 대위기임에도 불구하고, 1권에서 묘사되고 있는 배경 세계는 이 위기를 그다지 치명적인 것으로는 느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연애담으로 읽히는 특성과 상당히 과장되어 있는 인물 조형 때문일 것이다. 만남에서 시작되지 않는 이야기.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년과 소녀가 이미 충분한 시간을 보내온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조금 독특한 느낌을 준다. 비일상과의 만남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되는 황금 패턴은 독자들에게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독자 역시 그 이야기와 처음 만나는 것이니까, 등장 인물들의 만남과 감정이 쌓여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등장 인물이 이미 충분한 교류를 한 상태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어렵다. 충분한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런 관계는 그저 '사전지식'이자 '설정'으로 굳어버리기 쉽다. 이야기를 읽고 감동하는 사람은 있어도 설정을 읽고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설정에서 이야기를 상상해내고 감동하는 친절한 사람들은 별개로 해두자. 자칫 잘못하면 '이거 뭐 베꼈어요'의 축음기가 되기 쉽다.) 포니테일 대마왕 1권은, 그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인물 간의 관계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쓰여져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이 되는 것은 제목에서 등장하는 포니테일 아가씨 '나은하'가 아니라, 꽤나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년 '서능라'가 된다. 설정 그대로 대충 고식적인 아키 타입에 해당될 수 밖에 없는 나은하와 달리, 서능라는 꽤 재미있는 녀석이다. 장난기 별로 없고, 과장된 부끄러움이나 우유부단도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도플갱어의 존재를 알고 그들을 처단하기 위한 훈련을 받은 성기사로서, 꽤 고지식하고 딱딱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의외로 트러블메이커인 은하를 잘 다루고 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꽤나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다. 연애담으로 읽히는 것에 비해 이 두 사람은 함께 있는 때가 그다지 많지 않고, 서로에 대해서 의존성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라라 싶을 즈음 은하가 위기에 빠지고,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1권에서 묘사되는 사회상에서는 도플갱어에 의한 위기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데, 이 부분에서 꽤 태연한 듯 보이면서도 죽음을 각오하는 은하의 반응이 꽤 괜찮은 느낌이다. 막무가내 아가씨처럼 보이지 않게 해주는 효과도 있고.) 중반 이후 해결책이 보일 듯 말듯 한 상황에서 뜻밖의 트러블이 발생해 긴장도는 높아지고, 두 사람은 마지막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뻔한 듯하면서도 두 사람이 쌓아온 시간을 보여주는 대사와 함께 산뜻한 마무리. 언뜻 무심해보이기까지 하던 녀석의 의외의 반응에 의해 두 사람의 관계는 재평가된다. 자연스럽고 당연해서 딱히 이름 붙일 것도 없는 두 사람의 관계. 아아, 귀여워죽겠다 이 커플. >_< 읽은 다음. 얼핏 무거워 보이는 세계관이 작품 내의 사회상과 그리 어울려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조금 귀여운 두 소년소녀의 관계에 찾아드는 난관으로서는 꽤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보통과 다른 두 사람을 부각시키는 데도 한 몫 하고 있고. 1권으로 두 사람의 '현재' 관계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된 듯하니, 다음 권부터는 조금 더 툭탁툭탁하는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 >_
[--하지는 못할 망정,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느냐.] - 나는 이 중간에 있으니까 죄없다.
- 고마워.
시-짱은, 참 착해. 나는 그렇게 말하던 그 아이의 모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 눈에 넘쳐 흐르던 눈물의 깊이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어울리지도 않는 책임감을 거짓으로 기우고, 자신은 절대로 줄 수 없는 것을 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멍청이, 사카키 시노부라는 이름의 여자애는 바로 그 순간에 태어났는데. "…?!" 당혹해하는 토오코를 보면서 나는 웃었다. 얼마전부터 토오코가 나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나 역시 토오코를 놀라게 해버린 것 같다. 어느 쪽이 더 놀랄까. '그' 토오코가 남자의 품에 안겨 행복한 것처럼 웃고 있는 걸 본 나와, '그' 시노부가 단물로 속옷까지 흠뻑 적시고 있는 것을 본 토오코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빨리 부서질까. 물어볼 것도 없다. 내 붕괴가 시작된 것은 그 모습을 보는 것보다 훨씬 먼저였으니까. 토오코가 나 말고 다른 누군가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10년동안 쌓아올린 나는 사라져버리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것보다도 훨씬 전에… 내가 그 누구보다도 토오코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에, 그리고 내가 그걸 즐기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에, 나는 이미 부서져 버렸던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던 것은 껍질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만은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었는데.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형태로, 그것마저 바스라지고 말았다. "토오코." 토오코는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로 나를 바라 보았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 같지만 자기 입을 막고서는 무리다. 틀어막고 있는 건 비명일까, 울음일까. 눈에 가득 고여 있는 눈물을 보면 후자 쪽일 것 같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 어느 쪽이라도 상관은 없지만, 적어도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바랬다. 마지막 말, 가루가 되어버린 '자신'에게서 필사적으로 쥐어 짜낸 말을 토오코에게 전하고 싶었으니까. "죽여줘." 토오코는, 비명 같은 울음을 터트렸다. * 토오코는 날 죽여주지 않았다. 용서할 수 없다. 그녀 때문인데. 모두 다 그녀 때문인데. 나를 지금까지 살게 한 것도, 나를 지금까지 죽지 못하게 한 것도, 모두 다 그녀 때문인데, 그것들을 모두 없애버렸으면서도 날 죽여주지 않는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될까. 선혈의 종막인가. 응, 그게 좋겠다. 토우코를 죽여버리자. 토우코와 같이 죽어버리자. 토우코의 앞에서 죽어버리자. 아, 그렇게 하려면 먼저 연습해야 한다. 착실하게 예습과 복습을 반복해서 몸에 붙이지 않으면 능숙하게 할 수 없게 된다. 토우코의 앞에서 멋지게 죽어야 하는데, 토우코가 얼마나 나를 믿고 따르는데, 그런 토우코를 실망 시킬 수는 없다. 근사하고 아름답게, 뜨겁고 선명한 피를 뿌리지 않으면 안된다. 토우코가 "시-쨩은 대단해."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하지 않으면 안된다. 커터를 꺼내 손목을 그었다. 손목 사이에 붉은 실금이 그어지고, 피가 조금씩 새어나온다. 아냐, 이건 안된다. 이미 한번 그어진 길을 따라 다시 한번 그었다. 겹쳐서 그었다. 곧고 예쁜 선을 그었다. 삐뚤빼뚤해지지 않도록 집중해서 선을 그였다. 따갑다. 말도 안 된다. 따가운 것만으로 사람이 죽을 리 없다. 단수라도 된 것처럼 조금씩 밖에 새나오지 않는 피를 견딜 수가 없다. 다시 한번, 못을 박듯이 나이프를 손목에 쑤셔박고 있는 힘껏 그었다. 아, 다행이다. 이제야 피가 제대로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봐, 토오코. 나, 힘냈어. 나, 언제나 토오코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부족했었지, 응. 토오코는 그런 날 견딜 수 없어서 힘들었던 거지, 응. 손목을 흐르는 동맥은 매우 깊은 곳에 있다. 리스트컷으로 사람이 거의 죽지 않는 이유는 사실 단순. 정맥을 조금 건드린 것만으로도 피가 그럭저럭 쏟아지니까, 자기가 동맥을 끊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설프구나. 노력이 부족한 거야. 괜찮아 토오코, 나 힘낼테니까. 내가 부족해서 토오코가 힘들었던 거니까, 내가 조금 더 노력해서 진짜로 토오코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될 테니까. 다시 한 번 나이프를 손목에 쑤셔 박았다. 진짜 리스트컷이라고 말하려면, 손목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겠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나이프를 쑤셔 박고, 쪼개질 때까지 그었다. 머리가 어지럽다. 토할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안 되는 거다. 손목으로는 안 되는 거다. 무슨 어린애 같은 짓을 하고 있었을까. 커팅 나이프 따위로, 손목을 긋는 정도로 토오코를 붉게 물들여 줄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있을 리 없지. 인간이 죽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필요하다. 10층 이상의 중력이나, 몸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폭탄이나, 아니면 뇌를, 또는 심장을, 한번에 꿰뚫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목을 자르면 피가 솟구칠까. 심장을 부수면 피가 폭발할까.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떻게 하면 토오코가 기뻐해줄까. "하지마! 하지마! 제발 하지마! 시쨩!!! 하지마! 하지마! 피가 나와! 죽을거야! 죽는다구! 하지 마!!!"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빼앗겼다. 몸의 균형이 무너져서 토오코와 함께 피웅덩이 속에 쓰러졌다. 토오코가, 그 연약한 토오코가,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내 몸을 흔들며 외치고 있었다. 아아, 가엽게도. 가여운 토오코. 완전히 패닉에 빠져 있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모르고,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도 모르고 있다. 가여워서 귀엽다. 귀여워서 가엽다. 나의 토오코. 나의 토오코. 나의, 나만의, 언제까지라도, 사랑하는 토오코. "울지 마, 토오코." 나는 손을 들어 토오코를 끌어 안았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토오코의 얼굴은 눈물범벅이라서, 축축하고 뜨겁고, 사랑스러웠다. 죽기 위해 끌어 모았던 용기를 써서, 토오코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난, 벌써 죽었는걸." …토오코는, 정말 시끄럽다. * 상처는 깊었다.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부터 발상이 잘못되었던 거다. 죽을 거면서 멋지게 죽고 싶다는 망상 따위를 덧붙이다니. 막을 게 분명한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살을 시도하다니. 그런 건 자살이 아니다. 시위에 지나지 않는다. 말을 모르는 아기가 울어대는 것처럼, 나를 봐달라고 필사적으로 애원하는 시위에 지나지 않는다. 토오코와 키다군이 나를 병원으로 끌고 갔고, 응급처치와 마취와 봉합이 끝나는 동안 나는 계속 잤다. 깨어났을 때는 부모님이 눈 앞에 서 있었고, 어머니가 우는 동안 아버지가 내 뺨을 때렸다. 하지만 난 새어나온 피로 붉게 물든 손목의 붕대만을 보고 있었고, 엉망으로 되었을 교복이 아니라 환자복을 입고 있는 사실에 감사했다. 나는 일주일동안 면회를 거부했고, 그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실 밖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한 아버지에게도, 상태를 보고 가는 의사 선생님에게도, 카운셀러에게도. 모든 생각을 거부하고, 겨울잠을 자는 벌레처럼 계속해서 잤다. 토오코는 매일 찾아왔지만, 난 토오코가 찾아올 때마다 날뛰었다.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아서 목이 찢어질 때까지 비명을 질러대고, 가까이 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집어 던졌다. 어머니가 토오코의 방문을 막아주었고, 아버지가 토오코를 의심하게 되었다. 이 일의 원인에 대해 뭘 알고 있느냐고 아버지가 다그치는 동안, 토오코는 계속 울었다. 울고, 울면서, 매일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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