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변경, 새 기분으로 새 시작…… 하려다 말았슴다.
by 용당주
[감상] 자살을 위한 101가지 방법. (2003/10/20)
   자살을 위한 101가지 방법ジサツのための101の方法.
   제작사 : 公爵Duke.

   내가 비주얼노블을 플레이 하다가 멍해졌던 적은 그다지 많지 않다. 시즈쿠를 처음 했을 때, 주인공의 망상 부분을 보고 그 '전파'에 중독되어 멍해져 있었던 정도일까. 그 뒤에도 많은 게임을 했고 질 높은 시나리오에 감탄한 적도 많았지만, 시즈쿠에서 받았던 것 같은 강렬한 전파압박감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 나를 모처럼 멍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 게임, 자살을 위한 101가지 방법의 오프닝이었다. 눈물나게 가난해보이는 퀄리티의 오프닝 동영상이었지만(.. 본 사람은 모두 안다. 그 처절함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명곡 ヒカリ와 함께 화면에 떠오른 한 마디 대사. '오빠, 추락사한 사람은 지면에 떨어지기 1mm 전까지 살아 있었던 거지?' 나는 그 대사가 과연 무슨 의미인지, 나는 대체 저 말에 왜 끌리는지도 모르면서 이 게임에 끌리기 시작했다(.. 대사는 약간 틀릴지도 모르지만-_-).

   내용을 언급하기 전에 외견을 말해보자. 이 게임의 외견은 처절하기 그지없다.(-_-) 등장인물들의 인체 비례가 어색한데다가, 이따금 괴이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채색 역시 눈물 나올 정도로 형편없다. 회사의 지명도도 낮고 게임의 성향 문제까지 있어서 잡지 같은 곳에서 광고하기도 힘들었으리라. 게다가 이벤트 CG의 수는 적고(.. 이벤트 CG말고 캐릭터의 선 자세니 표정이니 하는 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에로도는 높지만 그 장면들 하나하나가 상당히 귀축적인지라(..) 유저들을 발로 차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일한 강점이라면 음악을 맡은 YET11 씨가 꽤 유명한 사람이라는 정도였으리라.

   그렇다면 내면은 어떨까. 비주얼 노블에서 내면이라고 하면 '시나리오'다. 개인적으로는 이 게임의 시나리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솜씨도 상당히 좋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도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좀 미묘하다. 추측이긴 하지만 시나리오도 본래 소설로 내려다가 갑작스럽게 게임용으로 바꾼 것 같은 느낌으로, 일반적인 비주얼 노블과는 상당히 느낌이 틀리다. 사람에 따라서는 찬반이 나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내 취향에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래도 시나리오는 좋습니다, 추천'이라고 말하기는 좀 두렵다. '나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혹시 당신이 나와 취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거나, 강렬한 전파 게임을 해보고 싶다면 추천드리겠습니다.'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어쨌든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보자. 주인공 토라비시 타쿠지虎菱 拓司는 고교 3학년. '현실 세계'와는 다른 '망상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서 소꼽친구 칸나기 모미지神凪 紅葉와 피가 이어지지 않은 여동생인 토라비시 사모모虎菱 早桃을 범하고 있다. 물론 그도 그런 그런 자신을 혐오하지만. 그런 그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 동급생인 츠키시로 칸나月代 カンナ. 미인이지만 어딘가 묘한 행동을 해대는(4층에서 비닐봉지에 고양이를 담아 떨어트린다거나, 한쪽 손목에 늘 붕대를 감고 다닌다거나) 그녀와 타쿠지는 비밀스러운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은 UFO에게 납치당해 외계인에게 레이프 당했다고 믿고 있는 소녀 쿠모이 나타네雲居 なたね와 만나고, 갑작스러운 '대재앙'에 휘말린다. 같은 클래스의 불량 소년인 미도 슌이치御堂 俊一와 여교사 킨조 아카네코錦城 茜子를 포함한 7인의 운명은... ? '현실 세계', '망상 세계', '꿈의 세계'를 구분하는 것은? .. 작품의 방향을 가리키는 키는 셋. 세계, 최종파동, 빛.

   본디 '망상'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이 작품 중에서도 망상 세계는 상당히 위험하다. 흔히(... 이 업계에서는 -_-) 능욕陵辱이라는 말을 쓰지만, 이 게임에서의 그것은 상당히 심각하다. 자주 나오는 말로 괴롭히기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수준의 정신 공격을 히로인들에게 행하고 있는 것이다.(약간 당황했을 정도니까 ;;) .. 그러나 그것은 망상 세계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의 현실 세계가 망상 세계에 침식 당한 것처럼 미쳐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난데없이 들이닥친 '꿈의 세계'. ..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세계'와 '자살'의 관계가 이야기된다.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사건과 인물, 충격적인 이벤트 CG들, 그 속에서 점점 더 선명해지는 이야기의 주제. 극단적인 전개가 많아서 추천하기 어렵다. 사람에 따라서 호오가 너무 심각하게 갈리기 때문에 추천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이 이야기하려는 주제를 정확하게 풀어낸 솜씨는 훌륭하고, 높게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하는 네타바레 잔뜩인 잡상. 해 볼 생각이 든 분이 계시다면 안 읽는 쪽이 좋을 듯.

   사모모 양의 대사, '오빠, 추락사한 사람은 지면에 부딪치기 1mm 전까지 살아 있던 거지?'는 꽤 의미심장한 대사다. 우리는 분명히 살아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떨어져 내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떨까? 지면까지 1mm 남은 추락자를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모모 양은 그 의미로, 자신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의미로 그 대사를 내뱉았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사실 사람이란 지면에 격돌한 순간에도, 어쩌면 그 다음 순간까지도 살아 있다.

   이야기를 바꿔 생각해보자. 지면에는 '죽음'이 있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 지면에 격돌하는 것에 의해 인간은 죽는다. 높은 곳, 시작점이 '탄생'이고 떨어져 내리면서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다시피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인생의 도중에 무엇이 있었다 해도 최후에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죽기 위해 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끝에 죽음이 있다 해도, 그것을 알고 있다 해도 인간은 산다. 왜냐면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떨어져 내리면 자신이 언제 지면과 격돌하게 될 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죽음에 질려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눈을 감는 행위를 '인간의 무지'나 '인간의 한계'라고 불러도 좋다. 반대로 '인간의 힘'이나 '인간의 긍지', '삶의 깨달음'이라고 불러도 좋다. 눈을 감고 죽음을 보지 않는 것에 의해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눈을 뜨고 '죽음'을 볼 것을 선택한 자, 자살자들은 어떨까? 그들이 본 것은 '세계의 진실' 따위가 결코 아니다. 이 작품은 '자살'이라는 것을 일종의 '어필'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에 대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극단적인 형태의 어필. 그리고 그 어필은 '무력감' 때문에 행해진다. 전파에 의해 맛이 가버린 칸나가 물어오는 두가지 질문은 자살로 향해가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첫번째 질문. 전류가 흐르는 방에 개를 가둔다. 그러나 한 마리가 있는 방은 계속해서 전류가 흐를 뿐이고, 다른 한 마리가 있는 방은 머리에 스위치를 달고 그게 눌러지면 전류가 멈추는 곳이었다. 이 두마리의 개를 이따금 전류가 흐르고 벽을 넘어가면 전류가 흐르지 않는 안전 지역이 있는 방에 가두었다. 머리에 단 스위치를 누르면 전류가 멈추는 방에 있던 개는 벽을 넘어 안전 지역에 도달했지만, 다른 한 마리는 그저 제자리에서 전류를 참고 견딜 뿐이었다. .. 이유는 간단, 한 마리는 '위기의 회피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한 마리는 그런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질문. 사람이 굉장히 부족한 보육원에서 자란 아기와 일반 가정에서 자라난 아기는 사망률과 발병률에서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일반 가정에서 자라난 아기쪽이 훨씬 건강하다. .. 이유는 간단, 아기는 자신의 존재를 울음으로 어필하는데, 사람이 부족한 보육원에서는 그 울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판단해 무시하고, 그에 의해 아기는 자신을 어필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곳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 자각은 발병률과 사망률에 크게 관여하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동시에 자기에 대한 무력감. 그것이 자살을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어필이기도 하다. 이 게임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무력감은 허무감으로 이어지고, 현실에서 '현실감'을 찾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망상의 세계를 만들고 거기에 도피하는 것으로써 자신을 유지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난데없이 닥쳐온 '대재앙'은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엉망으로 만든다. 자신이 망상했던 것들이 현실에서 나타나고, 현실은 너무나도 끔찍한 모습으로 변한다. 그런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꿈의 세계'. 그곳에서 주인공은 꿈을 꾸고 있었을 뿐으로, 그 곳에는 그 어떤 악몽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생각한다. '그 세계가 이상할 정도로 현실감이 희박했던 것은, 그것이 꿈이기 때문이었나?'

   주인공이 세계를 만들 수 있다거나 어떻다거나 하는 건 뒤로 미루자. 그건 표면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 최후의 위기는, 소꼽친구에게 배신당해 생명의 위기에 처하거나 하는 순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주인공이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적을 쓰러트리고, 바야흐로 자유자재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게 된 순간 찾아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대로 세계를 만들 수 있게 된 주인공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어딘가의 에로게, 어딘가의 연애 게임에서 질리도록 본 것 같은 '행복하고 마음아픈 시츄에이션'의 세계들.

   그러나 결국 주인공은 최후의 위기를 이겨낸다. 결국 그의 '세계'는 자신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했던 세계인 것이다. 살해당하기 바로 직전인, 인류는 이미 거의 다 멸망해버려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주인공은 자신의 세계라고 인정한다. 세계를, 자신을 긍정한 주인공은 다시금 그 세계로 되돌아간다. 자신을 죽이려던 상대를 죽이고 피투성이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것이 그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 긍정에 의해서 그는 자신의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울하고 음울하며 폭력적인데다 과격하다. 결말은 괴이하고 그림도 형편없지만, 이것은 '좋은 이야기'다. 틀림없다.
by 용당주 | 2003/10/20 00:00 | 감상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ryudo.egloos.com/tb/84578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Eclipse at 2008/04/22 18:59
마지막의 그 메타픽션적 전개는....덜덜더덜.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쫙이랄지.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카테고리
최근 등록된 덧글
최근 등록된 트랙백
사랑의 전사 초 사이어인
by 솔로부대를 위한 진혼가
오늘의 눈오는 잡동사니
by 잠보니스틱스
200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by 추억으로 변하는 나 ~Egois..
<우리들의 타무라군> VS..
by 명랑사회 선진조국 - 勤下呻年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by 전파 발전소
글의 내용과 글쓴이의 관계에..
by 전파 발전소
RADIANT SILVERGUN SO..
by Secret Garden
장르소설과 무협소설 100선.
by 새벽기사의 기이한 공방- 『..
츤데레란 단어에 대해서...
by POLISH APPLE
동족발견
by 이미지 제로
이전 블로그
rss

skin by 이글루스